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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무열사 소장 고문서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 지정일
-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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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
고흥 무열사 소장 고문서는 진무성(陳武晟) 장군과 그 후손 5세대에 걸친 7인의 기록물로, 교령류(敎令類) 37점, 증빙류(證憑類) 3점, 명문문기류(明文文記類) 5점, 서간통고류(書簡通告類) 15점, 소지계장류(疏箚啓狀類) 10점 등 총 70점에 달한다.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료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고흥(흥양) 출신 무장들의 구체적인 활동과 현창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조선 후기 무신들의 관직 활동을 일관성 있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특히 진무성의 아들인 진후평(陳後平)이 1666년에 받은 ‘흥양감목관 고신(興陽監牧官 告身)’은 현재까지 확인되는 국가유산 중 유일한 감목관 임명 사례로, 독보적인 희소성과 높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본 고문서는 임명장뿐만 아니라 호구단자, 분재기, 통문 등 다양한 주제의 문서를 포함하고 있어 조선시대의 군사 제도와 가계 계승, 그리고 지역 유림들의 공론 형성 과정까지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진무성(陳武晟, 1566~1638)은 임진왜란 당시 해전에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으로 책록된 인물로, 전쟁 초기 흥양현 사도진(蛇渡鎭) 군관으로 활동하며 사천·당포·당항포·율포 해전 등 주요 승전에 기여하였다. 함경도 유원진첨사, 행경흥도호부사 등을 역임하다가 1626년(인조 4)부터 1628년(인조 6)까지는 삼도수군통제영의 실무 책임자인 우후(虞侯, 정3품)를 역임하였다. 1638년 73세의 나이로 별세하여 두원면에 안장되었다. 1826년 대서면에 사우 용강사(龍岡祠)를 건립하여 창원박씨 박유원, 박태수, 박홍세, 진무성이 함께 모셔졌다. 1868년 훼철령에 의해 철폐된 이후, 1882년(고종 19)에 사우를 복설·이건한 후 ‘무열사(武烈祠)’로 개칭하여 단독 배향되고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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