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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선생묘
경기도 기념물
부가 정보
- 지정일
- 198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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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 선생은 인조∼현종대 조선의 내외 문제를 해결한 명상(明相)이다. 1641년에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이사(貳師)가 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가, 대청 외교(對淸外交)를 펼쳤다. 명나라 선박이 선천(宣川)에 들어온 일과 효종의 북벌 계획이 이언표(李彦標) 등의 밀고로 청나라에 알려지자 영부조용(永不調用; 영원히 쓰이지 않음)되어 벼슬에 물러났으나 곧 풀려났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668년에는 신하로서 가장 큰 영예인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이경석 선생 묘’는 부인 전주 류씨(全州柳氏)와 합장된 단분(單墳)이다. 봉분 동쪽에 묘표가 건립되어 있으며, 봉분 앞에는 최근에 제작한 석상과 향로석, 장명등이 있다. 봉분 서쪽에는 조선시대 석상과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망주석과 문인석이 묘역 좌우에 건립되어 있다.
원수방부(圓首方趺; 둥근 머리의 비신과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의 묘표는 1751년에 건립되었으며, 현손(玄孫) 이광회(李匡會)가 글을 짓고, 종현손(從玄孫) 이광사(李匡師)가 예서(隸書)로 썼다. 묘역 입구 대로변에 건립된 신도비는 1754년에 건립된 작품으로 개석방부(蓋石方趺; 지붕돌과 네모난 비석 받침)형태이다. 박세당(朴世堂)이 글을 짓고 이광사가 글씨와 전서(篆書)를 썼다. 이 신도비의 비신은 마모가 심해 땅에 묻었던 것을 1975년 새롭게 신도비를 건립하고 옛 신도비도 다시 수립했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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