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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 유적·문화재 🏛️ 시도지정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 상량문

📍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742-17

조선시대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지정일
200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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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상량문(上梁文)은 건물을 짓거나 부분적으로 수리할 때 그 연유 또는 역사적 사실, 건물주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 찬문(撰文), 공역자(工役者)의 이름과 상량 시기 등을 기록한 문서이다. 그 종류로는 최초 건축 시 작성하는 창건 상량문, 건물이 낡거나 수리할 때 작성하는 중수 상량문, 기존 건물을 다시 지을 때 중건 상량문 등이 있다.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상량문』은 조선후기 서예가이자 학자인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33세였던 1818년(순조 18)에 쓴 상량문이다. 당시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金魯敬)은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하며 해인사 중건 사업에 참여하였고, 이에 김정희에게 1817년 해인사 중창을 위한 시주를 권하는 「해인사 중건권선문(海印寺 重建勸善文)」을 쓰게 하였다.

이 상량문은 1971년 대적광전 보수 공사 중 들보에서 발견되었으며, 원본은 해인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 자리에는 원본 대신 이를 그대로 쓴 모본(模本)과 보수기(補修記)를 넣었다.

해인사는 1695년부터 1871년까지 176년 동안 일곱 차례의 화재를 겪었는데, 특히 1817년(순조 17) 발생한 여섯 번째 화재는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축물을 소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김정희는 이러한 잦은 화재를 예방하고 진압하고자 상량문 말미에 육위사(六衛詞)를 붙였는데, 이는 《법화경》 <화성유품(化城喩品)>의 8방(八方) 16불명(十六佛名)과 《아미타경》의 6방(六方) 불명을 적은 것으로, 화재 예방과 진압을 위한 일종의 비방(祕方) 역할을 하였다.

상량문은 감청색 비단에 금니(金泥)로 쓰였으며, 글자 크기는 세로 4.1㎝, 가로 3.5㎝이고, 한 줄에 20자씩 67줄이 해서체로 쓰였다. 추사체가 완성되기 이전의 작품으로, 글씨는 반듯하고 품위가 있으며, 자신의 개성을 과감히 드러내기보다는 법식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뚜렷하다.

해인사에서 남아 있는 김정희의 글씨는 이 상량문이 유일한데, 이는 김정희가 해인사에 머물며 글씨로 명성을 떨친 만파 의준 스님의 글씨를 존경하여 스님의 글씨가 있는 해인사에는 자신의 글씨는 남기지 않았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 상량문은 김정희의 초기 작품 중 대표적인 유물로, 그의 젊은 시절부터 가문을 통해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해인사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상세 설명

한자: 陜川 海印寺 大寂光殿重建 上樑文 |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 | 수량/면적: 1점
평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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