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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 유적·문화재 🏛️ 시도지정

용담임흘관련고전적

📍 경남 밀양시 밀양대공원로 100

조선시대 ·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부가 정보

지정일
200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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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

조선시대 때의 학자․의병장이었던 용담 임흘(1557~1620)관련 고전적(龍潭 任屹 關聯 古典籍)으로 용담유고(龍潭遺稿 1卷), 용담취규정잡영 해서본 1권(龍潭翠叫亭雜詠 楷書本 1卷, 1599年), 용담취규정잡영 초서본 1권(龍潭翠叫亭雜詠 草書本 1卷, 1600年), 임오사마방목 1卷 (壬午司馬榜目 1卷, 1582年), 가례부해 4권 (家禮附解 4卷) 등 총 5종 8권이다. 선생의 휘(諱)는 흘(屹), 자(字)는 탁이(卓爾). 호(號)는 용담(龍潭). 본관(本官)은 풍천(豐川), 1582년에 실시한 사마시(司馬試)에 2등으로 올랐으나 곧 경북 봉화로 낙향하여 용담계곡에 집을 짓고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로 낙을 삼았다. 선생은 일찍이 李퇴계의 제자인 소고 박승임(嘯皐 朴承任)․월천 조목(月川 趙穆)․한강 정구(寒岡 鄭逑)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수학하여 예학(禮學)에 밝아 당세의 큰 그릇이라고 평가받았다. 특히, 한강(寒岡)선생은『그대는 道學에 침잠하기를 날로 깊은 맛이 있으므로 내가 몹시 부러워하는 바다. 나는 그대와 같은 好禮之人과 늘 더불어 깊게 헤아리지 못함이 애석하도다.』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류종개(柳宗介) 등과 함께 의병을 창의하여 문경 일원에서 왜적과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선생은 전옥서(典獄署)참봉, 동몽교관(童蒙敎官)에 각각 임명되었으나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로 정계가 혼탁하자 권귀(權貴)를 책망하는 상소를 올린 후 귀향, 모든 세상 출입을 끊고 독서로 여생을 보내자 후인(後人)들은 선생을 충의(忠義)의 선비이며 지조(志操) 높은 야인(野人)으로 지칭하였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상세 설명

한자: 龍潭任屹關聯古典籍 | 관리자: 밀양시 | 수량/면적: 6책(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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