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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
조선시대 · 보물
부가 정보
- 지정일
- 202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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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1747년(영조 23) 숙종 비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의 회갑을 맞아 존호(尊號)를 올린 것을 축원하고 기념하기 위해 경복궁 옛 터에서 시행된 정시(庭試)의 모습과 영조가 내린 어제시(御製詩)에 50명의 신하들이 화답한 연구시(聯句詩)를 담은 작품이다. 『영조실록』 및 『승정원일기』의 기사와 정확히 일치하는 이 작품은 총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폭에는 근정전 정시의 장면이 담겨 있는데 화면 상단에는 백악산이, 화면 중앙 근정전 터 위에는 차일(遮日)과 함께 영조의 친림을 상징하는 어좌(遮日)가, 화면 하단에는 영제교(永濟橋) 및 어도(御道)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때 시행된 정시에서 영조는 이유수 등 15명을 뽑았다. 제2폭에는 영조가 내린 어제시가 담겨 있는데, “창업하고 중흥시킴은 오랜 세대의 법이요, 용이 웅크리고 범이 걸터앉은 한양성이라[創業中興萬世法 龍蹲虎踞漢陽城]”는 내용이다. 제3∼8폭에는 50명의 신하들이 화답한 연구시가 담겨 있는데, 3폭에 좌의정 조현명 등 9명, 4폭에 부사직 이철보 등 9명, 5폭에 호조참의 홍계희 등 9명, 6폭에 병조참지 김상석 등 9명, 제7폭에 병조정랑 정언충 등 9명, 8폭에 주서 박성원 등 5명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연구시는 영조가 내린 어제시의 운자(韻字) ‘성(城)’을 따라 지었다.
‘근정전 정시도 및 연구시 병풍’은 왕실 행사를 도해한 계병 중 이른 시기의 사례이자 제작 시기가 명확한 기년작으로 회화사적 가치가 크다. 경복궁 옛 터의 광화문, 근정전, 경회루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연구시의 참여 인물 및 내용을 통해 작품의 제작 배경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은 영조가 경복궁 옛 터를 중시했던 기조가 반영되어 있으며, 영조가 추진한 탕평책의 핵심 인물들이 연구시를 지은 것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영조의 정치적 입장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히 왕실 행사의 기록 그림을 넘어, 영조의 정치 철학과 국가 운영 방식을 시각적으로 담아낸 중요한 자료라 평가되므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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