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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 유적·문화재 🏛️ 시도지정

봉국사 아미타괘불도

📍 서울 성북구 정릉로 202-27

조선시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지정일
20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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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아미타불․관음보살․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을 화면에 가득 묘사하고, 그 아래 가섭존자․아난존자, 하단에 사자를 탄 문수동자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를 배치한 괘불도이다.

이와 같은 도상은 비로자나삼신불괘불도(1832, 흥천사 괘불도) 및 석가모니괘불도(1886, 봉은사 괘불도) 등과 동일한 도상을 공유하면서 상단 부분만 아미타삼존으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한 괘불도는 19세 기 말 20세기 초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 이러한 예로 1901년 서울 연화사 및 봉원사 괘불 도, 1902년 고양 흥국사 괘불도(경기도 유형문화유산)등이 있다.

화기의 삼각산 봉국사(三角山 奉國寺)는 원래의 글씨를 지우고 덧쓴 흔적이 뚜렷해서 향후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괘불도는 서울, 경기도 일대에서 화명을 떨쳤던 수화승 김곡영환(金谷永煥), 한봉정엽(漢峰瑲曄), 덕월응륜(德月應崙), 명 응윤감(明 應允鑑), 금화기형(錦華機炯), 계은봉법(啓恩奉法), 의암현조(義庵現照), 용담규상(蓉潭奎祥), 간조(亘照), 계웅(戒雄), 원익(元益), 성련(性蓮), 봉옥(奉玉) 등 14명의 화승이 제작했다.

괘불을 주도한 金谷永煥은 백련사 괘불도(1892년), 남양주 불암사 괘불도(1895)를 조성한 사례가 있으며, 1902년에 봉국사 괘불도에서 새롭게 구성한 존상표현은 이후 1902년 연화사 괘불도와 봉원사 괘불도에 이어진다.

제작 화승 뿐 아니라 조성에 관여한 인물로 상궁 하씨, 공씨, 정씨, 이씨, 백씨를 비롯하여 총 26인이 시주에 참여. 특히 상궁 5명은 괘불 제작을 주도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상궁이 불화제작에 적극 참여한 것은 이 시기의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나타나는 사회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이다.

서울지역에서는 연대가 올라가는 괘불도에 속하며 형태, 필선, 채색, 문양, 장식 등 각 세부 묘사 등이 당시 불화와 비교하여 완성도가 높아, 19세기 말 서울지역에서 제작된 새로운 괘불도 형식의 선행적인 사례로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상세 설명

관리자: 봉국사 | 수량/면적: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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