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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범종
조선시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 지정일
-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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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서울 봉원사 대웅전에 봉안 중인 이 작품은 종신에 기재된 주종기를 통해 1760년(영조 36) 가야사(伽倻寺) 동종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야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했던 사찰로, 1884년(헌종 10) 풍수지리설을 믿었던 흥선대원군이 이곳에 부친 남연군 이구의 묘를 쓰기 위해 폐사되었다.
가야사 동종이 언제부터 봉원사에 봉안되었는지 현재는 알 수 없지만, 1943년 안진호 스님이 편찬한 봉원사지『奉元寺誌』 제9절 제3항 「불구 등 귀중품」에는 봉원사 재산으로 기록되고 있어 늦어도 20세기 전반에는 봉원사에서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전체높이가 84.5cm이고, 입지름이 61cm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동종 가운데 그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전체적으로도 짙은 검은색이 감돌고 있어 육중한 무게감을 두었 다. 더불어 종형도 천판에서 시작된 외선(外線)이 종신 2/4부분까지 완만한 곡선으로 올라가다가 3/4부분에서 종구까지 완만하게 떨어지고 있어 마치 항아리와 같은 안정적인 형태이다.
봉원사 동종은 편평한 천판(天板) 위에 음통(音筒)을 갖추지 않는 쌍룡(雙龍)의 종뉴(鍾鈕)를 표현하였으며, 그 아래 종신은 2줄의 횡선을 이용하여 종신을 크게 세부분으로 구획하였는데, 그 가운데 상단에만 다양한 도안(圖案)을 장엄하였다. 천판 아래에는 내부에 ‘옴’자가 새겨지고 외곽에 돌기를 표현한 원권(圓圈)의 범자(梵字) 8개가 부조되었다. 그 아래에는 사다리꼴 형태인 연곽(蓮廓) 4개가 장엄되었는데, 사선문(斜線文)으로 연곽대(蓮廓帶)를 구획하고, 그 안에는
9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연곽 사이에 빈 공간에는 머리에 원형의 두광을 마련하고 합장하며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보살입상 2구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옆에는 ‘준제진언'(準提眞言)을 간략하게 표기하기도 하였다.
주종기를 통해 이 작품이 1760년 덕산 가야사의 대종으로 만들어졌으며, 후원에는 덕산, 예산, 대전, 천안, 결성(홍성), 옥천 등에 사는 많은 지역민과 그 제작에는 18세기 중반에 활동했던 사장(私匠)인 이만돌(李萬乭), 신덕필(申德必), 최종취(崔宗就) 등 3인이 참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봉원사 동종은 비록 그 크기가 대형은 아니지만, 주조상태와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할 뿐 아니라, 경상도 이씨일파에 대표적 장인인 이만돌에 대한 작품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 주종기를 통해 명확한 제작연대와 후원 계층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18세기 후반 동종의 일반적인 양식이나 私匠에 대한 계보 및 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도 높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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