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진도아리랑
시대미상 · 전라남도 무형유산
부가 정보
- 지정일
- 2022-07-21
위치 · 길찾기
🎧 오디오 가이드
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진도는 어느 마을을 가든지 멋진 부녀자의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고, 목청 또한 구성지다. 진도아리랑뿐 아니라 남도의 창 민요는 모두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진도아리랑타령은 그 가락과 멋과 묘한 흥취가 타 아리랑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점이 있다. 따라서 진도 아리랑은 가락이 구성지고 장엄(壯嚴)하여 소리에 힘이 든다. 남도창은 육자백이처럼 모두가 힘이 들며, 특히 진도아리랑타령은 힘이 들며 그 가락에 특징이 있다. 진도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하고 밭 매는 사람과 길가는 사람이 노래로 화답(和答)하는 경우도 있다. 唱者의 즉흥에 의하여 불려지는 진도아리랑에는 무한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 진도아리랑은 1900년도 초반 대금의 효시이자 명수(名手)인 박종기선생이 담시 신청(神廳)에서 박진권, 박동준, 채중인, 양홍도 등과 함께 진도아리랑을 정리(整理)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진도아리랑은 산아지타령류의 민요가 진도아리랑의 모체가 되었으며, 진도지방 출신의 그 누구 또는 단체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도아리랑 타령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일제가 우리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하고 낙성(1925년 10월) 기념식을 할 때 13도(道)의 명창, 악공들을 모아 예술잔치를 가졌었다. 이때 박종기 선생이 출전하여 대금으로 진도아리랑을 불렀는데 당시 총독이었던「재등」은 노래가락에 심취한 나머지 춤을 추며 “그 노래는 어느 지방에서 부르는 노래냐”고 물었다 한다. 이때 박종기선생은 “진도지방의 진도아리랑이요”라고 대답하였다고 하며, 이후 경성방송국 방송을 통해 진도아리랑이 전국에 최초로 알려지게 되었고, 진도출신의 명창들에 의하여 창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전한다.
진도아리랑의 전래와 창작 관련 논의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물은 박종기이다. 박종기가 신청의 여러사람과 그 가락을 정비하고 이름을 진도아리랑이라 하였다는 이야기, 조선신궁 건립에 맞춰 조선총독 앞에서 진도아리랑을 대금으로 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근녀 명창이 증언하는 1927년경 박종기 창작 및 보급에 대한 이야기 등은 박종기가 진도아리랑 창작과 보급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말해준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QR 코드
스캔하면 이 장소 페이지가 열립니다.
![TrPak [시간Time, 공간Space, 사람Human)] 중등 사회과 교수학습 교육포털](https://www.trpak.kr/data/logo/logo_1763375261.pn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