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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 유적·문화재 🏛️ 시도지정

창녕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

📍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931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부가 정보

지정일
1983-08-06

위치 · 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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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고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곽재우(1552∼1617)는 호가 망우당이며 선조 18년(1585) 34세의 나이에 별시에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 하여 무효가 되자, 일찌감치 과거에 나갈 뜻을 포기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군이 크게 패하자 의령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하여 적과 싸웠다. 그 공으로 유곡찰방에 임명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곧 벼슬을 버리고 현풍으로 돌아갔다. 정유재란 때에는 밀양, 영산, 창녕, 현풍의 네 고을에서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을 지키며 적의 접근을 막아내기도 하였다가, 계모 허씨가 사망하자 성을 나와 장례를 마친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나라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광해군 2년(1610) 왕의 간청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일을 맡아보았으나 곧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광해군 9년(1617)에 생을 마치었다. 그 후 ‘충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망우정 뒷편에 서 있는 비는 의병을 일으켰던 공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고을의 유림들이 세워놓은 것으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에 비 윗변의 양끝을 비스듬히 다듬은 모습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상세 설명

한자: 昌寧 忘憂堂 郭再祐 遺墟碑 | 관리자: 창녕군 | 수량/면적: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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