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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도곡서당
조선시대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부가 정보
- 지정일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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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 도곡서당은 영천자 신잠(申潛, 1491~1554)이 1552년부터 1554년까지 상주 목사로 재임하면서 유학 인재 양성을 위해 18개 면에 서당을 창립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이다.
◦ 이 서당은 처음 후계(后溪) 김범(金範)이 후진 양성을 하던 곳에 영천자 신잠이 목사로 부임해 오면서 서당을 창건했다. 후계는 진사 장원을 했으며, 학행으로 벼슬이 천거되고, 사후 선사(善士)로 평가될 만큼 당시 유명학자로서 이 학자를 통해 운영되었다. 서당은 처음 창건한 원래의 그 자리에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중건, 중수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내력은『긍암집(兢庵集)』,『상산지(商山誌)』등의 긍암(兢庵) 강세규(姜世揆)의 도곡서당 중수기(道谷書堂 重修記)에 기록되어 있다.
◦ 창설 초기의 기록은 임진란 등에 의해 소실되어 알 수 없으며, 서당 주변에 세거한 6개 문중이 현재까지도 취회(聚會)를 통해 운영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운영은 1697년(숙종 23) 이후부터 도곡서당안(道谷書堂案), 도곡서당기회록(道谷書堂耆會錄), 도곡서당전답안(道谷書堂田畓案), 향약 좌목(鄕約座目), 학교모범(學校模範), 심진록(尋眞錄), 존신계안(存信稧案), 보장서목(報狀書目), 임원록(任員錄), 돈사록(敦事錄) 등의 고문서 14종을 통해 확인되며, 이 기록물을 서당에 소장하면서 지금도 누가(累加)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는 1910년 국권피탈 이후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과 함께 만주로 이주한 독립운동가도 확인된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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