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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 지석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 지정일
-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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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 고려 충숙왕(1294-1339) 시기의 문관인 김순(金恂, 1258-1321)의 묘역에 있던 묘지석임. 김순의 자는 귀후(歸厚)이며, 신라 경순왕 김부(金傅)의 10세손임. 증조는 김민성(金敏成), 조부는 김효인(金孝印), 부친은 김방경(金方慶, 1212-1300)임. 모친 박씨는 박익정(朴益旌)의 딸로서 음평군부인(陰平郡夫人)임. 부인은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딸이며, 4남 3녀를 낳았음. 4남은 김영돈(金永暾), 김영휘(金永暉), 김사순(金思順), 김영후(金永煦)임. 3녀에서 장녀는 정지(鄭漬), 2녀는 백이정(白頥正), 3녀는 원의 좌승상(左承相) 아홀반(阿忽反)의 아들인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 등에게 시집갔음. 1279년(충렬왕5)에 과거 급제 후 출사하여 고위 관직을 역력했는데, 특히 부친인 김방경을 따라 원에 자주 왕래하였고, 원의 일본 원정에 종군하기도 하였음. 1312년(충선왕4)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영(文英)이며, 수원시 이의동에 세거한 안동김씨 문영공파의 선조임.
∘ 김순 묘지석은 1321년경 경기도 개풍군(開豊郡)인 덕수현 마산(馬山)에 조성된 묘소에 배설되었음. 이후 1942년 경기도 개풍군 임계면(臨溪面) 가정리(佳井里) 마산의 인가에서 발견되었음. 종중에서 마산에 소재하던 김순의 묘소를 확인한 후 1943년에 현재의 묘역인 경기도 안양으로 천봉하면서 묘지석도 함께 매설하였음. 2008년 문영공 김순 묘역의 정비 과정에서 묘지석을 출토하여 종중에서 보관하다가 수원박물관에 위탁함.
∘ 묘지석의 내용은 1321년(충숙왕 8) 민지가 작성하였음. 전후면에 우측에서 좌측으로 해서로 각석 되었음. 전면은 25줄, 후면은 26줄로 전체 51줄의 내용임. 전체적으로 정방형에 가까우며, 상단의 좌우 곡면 부분이 45도 각도로 절개되었음. 묘지석 1/3의 상단을 기준으로 상하 2개 부분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우측에서부터 4행과 18행 부분의 중간에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음. 상하로 분리되고 구멍이 파인 균열이 나타나지만, 비문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함.
∘ 묘지석의 내용에서 주목되는 점은 5개임. 첫째, 김순의 가계가 분명하게 제시된 점임. 시조 경순왕에서부터 부친 김방경에 이르는 계보가 게시되었음. 둘째, 군자의 덕행을 강조하는 유교적 덕목이 중시되는 점임. 덕행의 바탕이 충효라고 하는 것이 원대에 도입되던 송학의 영향이라고 분석됨. 셋째, 고려의 관료제가 과거제도에 근거하고 있으며, 문과 위주의 체제였음을 보여주는 점임. 김순의 과거 합격을 바란 것이나 문과로 승진하는 것을 대대로 기대하고 있다는 것에서 나타남. 넷째, 조선시대와 동일하게 관료의 임면과 전출이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임. 관료 후보군이 증대됨에 따라 나타나는 당연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음. 다섯째, 3녀가 원의 좌승상 가문에 시집간 것은 당시 려원 관계가 왕실만이 아니라 관료들 사이에서도 진행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임. 또한 묘지문을 작성한 문인공(文仁公) 민지는 이규보 등을 계승하는 문장가로, 김순의 묘지명이 당대 최고의 문장가에게서 찬술된 것임을 보여줌.
∘ 김순 묘지석은 14세기 안동김씨의 정치적 위상 뿐만 아니라 14세기 고려인들의 교유, 친분, 혼인 등을 파악할 수 있음. 또 고려시대 묘지석으로는 드물게 묘지명의 찬자(撰者)가 명확하며, 제작시기까지 추정할 수 있는 문화유산임. 그러므로 김순 묘지석은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함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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