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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국 문화재 지도

🏛️ 유적·문화재 🏛️ 시도지정

진관사 영산회상도

📍 서울 은평구

조선시대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

부가 정보

지정일
200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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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나레이션

문화해설

이 불화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1884년에 제작되었다. 가로로 긴 화면의 중앙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설법(說法)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 옆에 네 보살(菩薩)과 사천왕(四天王), 여섯 명의 제자(弟子)를 배치하였는데 화면의 빈 공간에 채운(彩雲)을 가득 그려 넣어 전체적으로 여백 없이 빽빽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본존인 석가모니는 붉은 색의 법의를 입고 연화대좌(蓮花臺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으로서 양감(量感) 있는 얼굴과 당당한 신체로 인하여 건장한 느낌을 준다. 몸에는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를 걸치고 있으며 두 손은 왼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오른손을 배에 댄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마치 아미타수인(阿彌陀手印)과 같은 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수인(手印)은 일반적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는 사뭇 다르지만 조선 후기에는 불상과 불화에서 이와 같은 수인(手印)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수인(手印)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본존(本尊)의 좌우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두 손으로 커다란 연꽃(白蓮)을 들고 본존을 향해 시립(侍立)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사천왕(四天王)이 각각 칼과 비파(향우측), 용과 여의주 및 탑(향좌측)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옆과 위로는 두 보살(菩薩)과 상체만 드러난 채 합장을 하고 있는 제자(弟子)가 좌우에 각각 3명씩 묘사되었다.

화면의 향우측 하단에 적힌 화기(畵記)에 의하면 이 불화는 19세기 후반에 왕실의 상궁에 의하여 발원되어 조성되었는데, 영산전(靈山殿)의 후불상단탱(後佛上壇幀)으로서 16나한정(羅漢禎) 4폭, 석제환인사자탱(釋帝桓因使者幀) 2폭, 관음탱(觀音幀) 1폭 등과 함께 1884년에 일괄적으로 조성되었다. 따라서 원래는 나한전(羅漢殿)이 아니라 영산전(靈山殿)에 봉안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횡축의 화면과 단아한 형태, 밝은 주조색 등 19세기 말의 불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당대 불화 중 대표작에 속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사진 국가유산청

상세 설명

한자: 津寬寺 靈山會上圖 | 관리자: 대*** | 수량/면적: 1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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